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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 노부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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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8-29 22:03 조회1,96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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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7년 무로마치 막부의 쇼군 후계자 문제를 명분으로 슈고 다이묘들이 항쟁한 ‘오닌의 난’ 이후 일본은 130년간 각지의 크고 작은 영주들이 전쟁을 일삼는 전국시대로 접어들었다. 교토의 무로마치 막부는 명목상 존재했을 뿐 지방의 영주들은 서로 더 큰 땅을 차지하기 위해 이웃의 영지를 마구 침범하는 전쟁을 계속했다. 그 결과 일본 전역은 전쟁터로 변했고 일반 백성들은 100년 이상 지속된 전쟁 속에서 혼란과 고통 속에 빠져 있었다. 그 속에서 거듭되는 전쟁 상황을 빨리 끝내고 통일을 통해 안정을 되찾으려는 자각이 영주들 사이에서도 점차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서로 자신이 천하의 패권을 쥐는 일인자가 되려 했기에 전쟁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이러한 때에 오다 노부나가는 파죽지세로 일어나 일본 통일의 밑거름을 닦았다.

통일의 주인공을 꿈꾼 남자

오다 노부나가 이미지 1

 

 

 

아버지가 죽은 후 오다 가문을 이은 오다 노부나가는 이전까지의 이미지를 벗고 뛰어난 전략적 재능을 발휘해 경쟁 관계에 있던 동생의 편을 들던 친척들과

오다 노부나가는 기존의 영주들과는 좀 다른 면모를 갖춘 인물이었다. 그는 성격이 급하고 매우 용맹하고 대담했지만, 그 이면에는 대단히 계획적이고 합리적인 면모도 가지고 있었다. 그를 만난 적이 있는 포르투갈의 선교사 프로이스는 오다 노부나가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했다.

장신에 마른 채격으로 수염이 적다. 목소리는 꽤 큰 편이며 항상 무예를 좋아해 천하고 상스럽다. 정의롭고 자비를 베푸는 것을 좋아한다. 오만하고, 명예를 존중한다. 결단력에 재능이 많고, 전술에 치밀함이 있지만, 규율을 지키지 않고, 부하의 진언을 대부분 따르지 않는다. 사람들로부터 이상할 정도로 외경을 받고 있다. 술은 마시지 않는다. 겸손히 자신을 낮추는 일은 거의 없으며, 자신 이외의 다이묘 대부분을 경멸하고, 마치 자신의 부하 다루듯 말한다. 좋은 이해력과 명석한 판단력을 가졌다. 신과 부처 등 우상을 경시해 점은 일절 믿지 않는다. 명의상 법화종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조물주, 영혼 불멸, 사후 세계 등의 존재는 없다고 단언하고 있다. 사업에 만전을 기하는 한편 공명에 최선을 다한다. 사람과 대화할 때 둘러대는 것을 싫어한다.

 

 

 

 

예수회 수사로 일본에 나와 있던 지오바니 니콜로(Giovanni Niccolo)가 16세기 말에 그린 오다 노부나가의 초상. 원본은 불타 없어지고 사진만 남아있다.

 

 

 

그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데도 민첩했다. 1540년대 말 포르투갈의 상인들을 통해 들어온 총포가 전투에서 매우 유용함을 간파한 오다 노부나가는 일본의 그 어떤 다이묘들보다 먼저 철포부대를 조직하고 이를 위한 전술을 개발해냈다. 오다 노부나가가 만든 철포부대는 통일 전쟁에 혁혁한 전공을 세웠고 이후 다이묘들도 오다 노부나가를 따라 철포부대를 동원함으로써 전국시대 전투 양상을 뒤바꿔놓기도 하였다.

오다 노부나가는 동맹을 해야 할 상대와 싸워야 할 상대를 잘 구별했으며. 전투에 나가서는 강한 카리스마를 발휘했지만, 평상시에는 서민들과 어울려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출 정도로 소탈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고 한다. 또 그는 자신이 통치하는 오와리국의 비옥한 토지에서 나오는 경제력뿐만 아니라 신흥상인들을 독려해 상업을 발달시켜 경제적 토대를 확고히 함으로써 교토에 진출해 천하의 패권을 쥘 준비를 차근차근해 나갔다.

교토 입성과 천하포무(天下布武)

크고 작은 전투에서 승리하고 동맹관계를 맺으면서 입지를 점차 넓혀가던 오다 노부나가가 교토로 진출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던 중 교토의 이보다 좀 전에 이미 오다 노부나가는 자신이 일본을 통일하고 전국시대를 끝내는 주인공이 되려는 야망을 세상에 공표한 바가 있었다. 그는 미노를 정복한 후, ‘천하포무(天下布武)’라는 인장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직역하자면 세상을 무로 덮겠다는 뜻인데 이는 자신의 힘으로 천하를 다 덮겠다는 의지표명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바나 산성으로 거처를 옮겨가면서 그곳의 이름을 기후[崎阜]라고 고쳤다. 이 기후의 기(崎)는 중국 주나라의 발상지인 기산(崎山)에서 따 온 것이었다. 이를 보고 어쩌면 오다 노부나가는 일본통일을 넘어 천황에 오르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해석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다 노부나가는 무로마치 막부에서 내리는 일체의 관직도 거부했고 천황이 주는 관직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로지 전국시대를 끝내고 통일 과업을 달성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그가 이들이 주는 관직을 받지 않은 것은 마음속에 이미 자신은 그들 위에 서겠다는 생각이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오다 노부나가의 급작스러운 성장과 중앙진출은 그를 견제하거나 반목하는 세력을 증가시켰다. 이전까지 승승장구하던 오다 노부나가는 더 큰 힘을 가진 진짜 세력자들과 힘을 겨루어야만 했다. 아사이와 아사쿠라 가문,

무로마치 막부를 끝내다

오다 노부나가가 일본통일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 있었다, 그것은 다케다 신겐이었다. 다케다 신겐은 오다 노부나가에게는 상당히 버거운 상대였다. 오다 노부나가는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는 다케다 신겐과 아사쿠라, 아사이 등을 부추겨 오다 노부나가의 토벌군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때 하늘은 오다 노부나가의 손을 들어주었다. 오다 노부나가가 그토록 어렵게 생각했던 다케다 신겐이 병으로 급사하고 만 것이다. 다케다 신겐 측은 그의 죽음을 숨겼지만 (다케다 신겐의 죽음을 숨기고 다른 사람이 다케다 신겐인 척하는 내용의 영화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카게무샤)]이다) 이미 오다 노부나가는 이를 간파하고 미리 준비해둔 쾌속선을 타고 비와호를 건너가 쇼군 아시카가의 군대를 대파하였다.

오다 노부나가는 자신에게 반기를 든 아사쿠라와 아사이는 자결토록 하고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는 교토에서 추방하였다. 이로써 전국시대의 상황에서도 아슬아슬하게 그 명맥을 유지하며 200년간 존속되었던 무로마치 막부는 끝이 났다. 명목상의 막부마저 사라지자 영주 간의 경쟁은 더 치열해져 갔다. 이제 누구라도 패권을 잡는 자는 눈치 보지 않고 새 막부를 만들어 대대손손 일본을 다스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오다 노부나가는 다케다 신겐의 아들 다케다 가쓰요리(武田勝頼, 1546~1582)의 군대를 철포부대를 이용해 무너뜨리고, 우에스기 겐신과 맞서게 되었다. 우에스기 겐신은 다케다 신겐과 그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맹장으로 그 역시 오다 노부나가에는 어려운 상대였다. 그런데 이번에도 하늘은 오다 노부나가의 편을 들었다. 우에스기 겐신이 오다 노부나가와의 격전을 앞두고 뇌출혈로 급사한 것이다.

다케다와 우에스기를 넘어선 오다 노부나가는 승승장구했다. 그는 11년간 자신에게 맞서온 이시야마 혼간지와의 대결에서도 수장이던 승려 겐뇨의 항복으로 승리하였다. 이제 명실상부 오다 노부나가는 통일의 주인공으로 관록과 면목을 과시할 순간을 맞고 있었던 것이다.

 

 

 

오다 노부나가가 주성으로 삼은 아즈치성을 그린 그림 [安土城圖](오사카성 천수각 소장)

 

 

 

혼노지의 변

그러나 오다 노부나가의 꿈은 어이없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1582년 통일을 눈에 앞두고 오다 노부나가는 하시바 히데요시(훗날 단바의 영주이던 아케치 미쓰히데는 원래 오다 노부나가의 장인이던 사이토 도산의 가신이었는데 사이토 도산이 죽은 뒤에는 여러 영지를 돌아다니다가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으로 들어가면서 통일전쟁에 많은 공을 세운 인물이었다. 아케치 미쓰히데는 혼노지에 오다 노부나가가 소수의 호위병사를 둔 것을 확인하고 급작스럽게 대군을 끌고 혼노지를 습격했다. 오다 노부나가는 데리고 다니던 가신 모리 란마루와 흑인 노예와 함께 끝까지 싸웠지만, 병력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했다. 결국, 오다 노부나가는 혼노지에 불을 지르고 그 불길 속으로 들어가 자결했다.

아케치 미쓰히데가 왜 오다 노부나가를 배신했는가에 대해서는 이후 의견이 분분하다. 오다 노부나가가 아케치 미쓰히데에게 인간적인 모멸감을 주었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오다 노부나가가 아케치의 영지이던 단바를 빼앗을 생각을 했기 때문이라고도 하며, 천황의 자리마저 노리는 오다 노부나가의 야망을 꿰뚫어본 천황파의 사주에 의해서였다는 설도 있다. 주군인 오다 노부나가를 살해한 뒤, 아케치 미쓰히데는 미처 신정권 정비를 할 틈도 없이 11일 후 주고쿠로부터 돌아온 하시바 히데요시와 겨루게 되었다. 오다 노부나가의 원수를 갚겠다는 명분으로 하시바 히데요시는 오다 노부나가의 다른 부장들을 포섭해 아케치 미쓰히데와 맞섰다. 명분상으로도 병력에서도 크게 밀린 아케치 미쓰히데는 결국 하시바 히데요시에게 졌고 사카모토로 도망가던 중 지역의 농민들 손에 최후를 맞았다.

 

 

 

메이지 시대에 그려진 [本能寺焼討之図]. 아케치 미쓰히데가 혼노지에서 오다 노부나가를 습격하는 것을 그렸다.

 

 

90% 이상 통일이 이루어진 일본은 결국 하시바 히데요시의 손으로 넘어갔다. 하시바 히데요시는 남은 통일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마침내 일본은 130년간의 전국시대를 끝내고 통일과 평화를 얻었다. 하시바 히데요시는 천황을 독촉해 도요토미란 성을 하사받고 관백이 되어아즈치모모야마시대의 두 번째 주인공이 되었다. 아즈치모모야마시대란 오다 노부나가가 무로마치 막부의 쇼군을 내쫓은 1573년부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막부를 연 1603년까지의 30년을 이르는 말이다. 오다 노부나가의 주성이 아즈치성었고,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주성이 모모야마성이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일본에서는 전국시대의 상황에 대해 이런 말을 한다고 한다. ‘오다가 쌀을 찧어 하시바(도요토미)가 반죽한 천하라는 떡을 도쿠가와가 힘 안 들이고 먹었다.’

오다 노부나가는 그가 이룬 통일의 업적이나, 독특한 성격, 합리적이고 당시로써는 상당히 근대적인 사고 등으로 인해 일본인이 좋아하는 전국시대 인물 중 1위에 뽑힐 정도로 지금까지도 인기가 높다. 일본에서는 그를 주제로 한 문학작품이나 예술작품, 만화 등이 속출하였으며, 최근에는 그를 주인공으로 다룬 게임도 나오고 있다. 오다 노부나가는 비록 통일을 보기 직전에 죽었지만, 자신의 힘으로 일본을 덮겠다는 꿈을 죽어서 이루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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