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난 6월 19일 한 트레이더가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일하고 있다. 바로 옆 TV 화면에서는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이 연말부터 자산매입 규모를 줄일 수 있다고 발표하는 모습이 방송되고 있다. 버냉키 의장의 이날 발언으로 미국 증시를 비롯한 신흥국 증시가 줄줄이 직격탄을 맞았다. / 블룸버그
미국이 지난 6월 출구 전략을 언급하자 아시아 신흥국 증시에서 외국계 자금 이탈이 이어졌다. 신흥국의 통화가치도 떨어졌다. 미국이 기침해도 아시아가 몸살 앓는 시대는 지났다는 이른바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이란 말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미국은 한국이 올 초부터 8월까지 415억달러(약 45조원, 한국무역협회 집계)를 수출한 거대시장이다. 전체 수출규모의 20%에 달한다.
- ▲ 자료: IMF/ 그래픽: 박종규(hosae1219@gmail.com)
경제 전문가들은 2014년 미국 경제를 상대적으로 밝게 전망한다. 한상완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주택 경기 회복과 제조업 경기 개선 등에 힘입어 경제성장률은 2%대 후반을 기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미국의 내년 성장률을 2.6%(10월 조정치)로 추정하고 있다. 올해 예상 성장률(1.6%)보다 개선된 것으로 ‘경기바닥론’에 힘을 실어준다.
미국 경제는 부동산 시장이 기지개를 켜며 회복 국면을 맞고 있다. 이런 추세는 당분간 이어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올해 주택 가격이 낮은 수준으로 조정된데다 모기지(주택담보대출) 금리 하락으로 부동산시장 전체 수급이 개선된 덕분이다.
소비심리도 좋아지고 있다. 박현수 삼성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소비가 늘어나면 기업들이 쌓아놓은 현금을 투자로 돌린다. 결국 실업률도 개선되는 선순환을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2009년 10%까지 치솟았던 실업률은 올해 8월 현재 7.3%까지 떨어졌다. 금융위기 이전 수준까지 돌아가기엔 아직 높은 수준이지만 뚜렷하게 낮아지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실물 경제 회복세가 미국 경기 호황으로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의 양적 완화(채권을 사들여 돈을 푸는 것) 축소 본격화나 재정 불확실성 같은 굵직한 변수가 발목을 잡을 수 있다.
◆ “美 경제, 큰그림에서는 완만하게 좋아질 것”
① 경제 회복 깎아 먹는 공격적 통화정책은 없을 듯
연준의 양적 완화 축소는 미국 경기가 회복 흐름을 타면서 이미 예정된 사안이었다. 정도, 방법, 시기의 문제였다. 글로벌 금융시장은 미국에서 관련 언급이 나올 때마다 급락과 반등, 진정 과정을 거치며 양적 완화 축소가 미칠 충격에 조금씩 적응해 왔다.
이 과정에서 신흥국은 타격이 만만치가 않았다. 미국이 출구 전략을 거론한 지난 6월 이후 두 달간 브릭스의 선두주자였던 인도 증시는 5.8%가 떨어졌고, 루피화 가치는 14% 폭락했다. 태국에서도 주가와 통화가치가 각각 17%, 5.6% 곤두박질 쳤다. 신흥국 경제가 둔화되면, 결국 미국 경제도 부메랑처럼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현지 연구소들은 판단하고 있다.
양적 완화 축소 방식이 돈을 덜 푸는 것에 그치지 않고 금리까지 인상되면 미국의 경기 회복세도 꺾일 수밖에 없다. 박현수 연구원은 “금리가 오르면 개인이 돈을 빌리는 비용이 올라가 자동차, 가전처럼 비싼 품목에 대한 소비가 준다. 소비 심리가 악화하면 미국 경제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경제 전문가들은 경기 회복세를 꺾어버릴 정도의 공격적인 출구 전략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벤 버냉키에 이어 차기 연준 의장으로 지명된 재닛 옐런 현 연준 부의장이 온건한 통화정책에 대한 철학을 갖고 있단 점도 이런 전망에 힘을 실어준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미국 유력지는 옐런 부의장이 매달 850억달러 규모로 채권을 매입하는 양적 완화 정책을 이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축소하더라도 아주 천천히, 경제 회복세에 타격을 주지 않는 선에서 이뤄질 것으로 전망한다.
② 재정 불확실성, 올해 4분기까지는 발목
정치권의 리더십 부재에 따른 재정 불확실성도 경제 회복세에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중대 요인이다. 미 의회가 설정해놓은 정부 부채한도 증액 협상이 실패로 돌아갈 경우 현재 연방정부 셧다운(일시 폐쇄) 상태에서 나아가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촉발시킬 수 있다. 현재 자금 조달 상한선은 16조7000억달러다. 앞서 제이콥 루 재무장관은 오는 17일에 연방정부의 부채규모가 상한선에 도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때까지 한도를 증액하지 않으면 국채 이자 지급과 공무원 급여 및 사회보장 지출을 할 수 없어 디폴트에 빠지게 된다.
미국 전문가들은 미국이 실제로 디폴트로 갈 가능성은 작다고 보고 있다. 전 세계 금융시장에서 미 재무부가 차지하고 있는 핵심 위치를 고려할 때, 디폴트 여파는 역사상 최악의 증시 하락장 같은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중혁 IBK투자증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미 정부의 셧다운으로 관련 종사자 80만~100만명의 급여가 미지급된다. 당장 올해 4분기 경제 성장률에 타격을 줄 것이다. 이미 여론이 너무 나쁘고, 전 세계 충격파가 클 수 있는 사안이라 (디폴트까지 가지 않도록) 정치권이 늦어도 다음주까지는 한도 증액에 합의를 볼 것”이라고 예상했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도 “전 세계 시장에서 미국의 위치를 봤을 때 기준점이 흔들릴 수 있는 사상 초유의 일인 만큼 해결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 전차 군단 對美 수출 전망 ‘맑음’
- ▲ <자료 : 한국무역협회 / 그래픽 : 박종규(hosae1219@gamil.com)>
한국이 미국시장에 수출하는 주요 업종은 스마트폰, 자동차·자동차부품을 파는 이른바 전차(電車·IT와 자동차 업종) 군단이다. 부동산 시장 회복과 실업률 하락 등으로 미국 경제가 다소 좋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 만큼 이들의 수출 전망도 밝다고 관련 업종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미국 시장은 고사양 제품이 주로 팔리는 곳이기 때문에 업체들로선 마진이 좋고, 업체간 경쟁도 가장 치열한 중요한 곳이다. 다만, 업종별로 신제품(신차)에 따라 성장 정도면에서 희비가 다소 엇갈릴 가능성도 있다.
일단 자동차업체는 신차 라인업이 갖춰지며 내년을 기대해볼 만하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현대·기아차는 미국 금융위기, 일본 대지진 등을 거치며 경쟁업체들이 고전할 때, 물량 공세로 시장점유율을 10%까지 늘렸다. 내년부터는 신형 쏘나타 판매가 시작되면서 마진이 좋아져 실적도 더 좋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평가했다.
현대·기아차가 미국 시장에서 재도약하기 위해서는 공급량도 뒷받침돼야 한다. 고태봉 연구원은 “미국 자동차시장은 매년 7%씩 성장하고 있는데, 현대차는 2% 성장하는 데 그치고 있다. 미국 현지 2개 공장 가동률을 110% 넘게 돌리고 있는데도 작년 대비 공급량은 줄었다. 국내에서 만들어 수출하는 물량도 달린다. 공급량 부족에 대응하는 게 관건일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기세를 몰아 내년에도 성장세를 이어가겠다는 계획이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직 애널리틱스(SA) 자료를 보면, 삼성전자는 올해 2분기(4~6월) 북미 지역에서 스마트폰 1200만대를 팔았다. 지난해 같은 기간(600만대)에 비해서는 2배나 늘어난 것이다. 이 기간 애플 판매량(1100만대)을 앞질러 1위 자리를 빼앗기도 했다.
전문가 상당수는 최근 출시한 ‘갤럭시 기어’에 대해 악평이 쏟아지고 있어 영업실적 성장세에 악영향을 주지 않을까 우려한다. 삼성 내부 관계자는 “3분기 영업이익 10조원을 넘어 지속 성장하려면 신제품이 잘 돼야 하는데 갤럭시 기어에 대한 혹평이 나오고 있다. 사내에서도 완성도를 높이지 않고 출시한 데 대한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